2022년 6월 21일 누리호 2차 발사가 최종 성공하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EU), 인도에 이어 1톤 이상의 페이로드 (탑재 능력)를 우주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되었습니다. 누리호 발사 성공까지 험난했던 우리나라의 로켓 발사의 역사를 뒤돌아 보겠습니다.
1. KSR - 과학 로켓 1 / 2 / 3호
로켓 기술은 무기화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 간에 기술 이전이 철저히 금지되기 때문에 스스로 숱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발전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기술로 시도한 로켓의 시작은 KSR 계획이라 불리던 과학 로켓 계획을 첫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과학 로켓 1호 (KSR-I)
1 단식 고체연료 로켓으로 중량 1.2톤에 높이 6.7미터의 단순한 형태였습니다. 1993년 6월 4일 충남 태안군 안흥 시험장에서 첫 발사를 했으며, 지상과 통신이 잘 이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 과학 로켓 2호 (KSR-II)
과학 로켓 2호는 2단 고체연료 로켓으로 1997년 9월 1일 1차 발사 후 20초 만에 연락이 두절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듬해 6월 11일 같은 안흥 시험장에서 2번째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소규모지만 단 분리 기술과 추력 편향, 낙하지점 유도 등의 기술을 얻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 과학 로켓 3호 (KSR-III)
과학 로켓 3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으로 2002년 11월 28일 안흥 시험장에서 발사했습니다. 참고로 액체연료 로켓 기술은 고체연료 로켓보다 더 힘든 상위 기술입니다. 당시 목표 고도에 못 미치는 비행 궤적을 나타냈지만 관성 항법 장치, 추력 벡터 제어장치, 발사대 등을 국산화하고 위성발사체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KSR 계획 종료 후, 구체적인 연구 수행을 위한 전체 시스템 기반을 조성하며 다음 계획인 KSLV (Korea Space Launch Vehicle, 한국형 발사체) 계획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2. KSLV-I 나로호 1/ 2/ 3차 발사
새 발사센터가 전남 고흥의 나로도에 설립됐으며 이 이름을 따서 나로호로 지었습니다. 2단 액체 로켓으로 100킬로그램의 탑재 능력을 갖고 있으며 높이는 33.5미터입니다.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로켓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단, 1단 로켓은 러시아의 에네르고마쉬가 개발한 RD-151 엔진을 사용했으며, 국내에 들여와 자체 제작한 8톤급 2단 로켓과 조립을 진행한 후 발사했습니다.
강한 폭발을 제어해야 하는 어려운 1단 로켓 개발은 아직 우리 기술로 개발할 수 없던 시절입니다. 총 3차 발사 시도 만에 성공을 했으며 1, 2차 발사에서 실패한 원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 1차 발사 (실패)
2009년 8월 25일에 발사했으며, 1단과 2단 로켓의 페어링이 미분리되며 실패했습니다.
▶ 2차 발사 (실패)
1차 발사 후, 1년 뒤 2010년 6월 10일에 2차 발사를 했으나 공중 폭발로 실패했습니다.
▶ 3차 발사 (성공)
2013년 1월 30일 나로과학위성 (STSAT-2C)을 지구 저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려놓으며 세 번째 발사 만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KSLV-I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며 1단 로켓까지 모두 우리 기술로 개발하는 KSLV-II 프로젝트로 진행하며 누리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나로호 발사의 성과로 발사체 체계 기술, 발사체 상단 페어링 기술, 발사장 지상시스템 기술을 확보하게 됩니다. 또한 누리호 개발의 단초가 되는 75톤 엔진 개발 착수와 1단 대형 추진 탱크 개발기술에 대한 선행연구가 진행됐습니다.
3. KSLV-II 누리호 1차 / 2차 발사
KSLV-II 프로젝트는 10년간 나로호 개발 때 보다 네 배가 많은 1조 9천억을 자금이 집행됐습니다. 많은 전문인력으로 발사체를 만드는 선진국과 달리 적은 인원으로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 프로젝트는 시작됐습니다.
1.5톤급 실용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 강한 추력의 엔진 개발이 필수였습니다. 위 그림에 보이는 1단 로켓에 75톤급 로켓 엔진이 4개로 300톤의 추력이 필요하고, 2단은 75톤의 추력, 마지막으로 3단에는 위성을 궤도에 자리 잡게 하는 7톤급 엔진이 탑재됩니다.
누리호 개발에 성공하기 위한 핵심 기술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나눠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75톤 로켓 엔진 - 75톤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로켓은 사실상 연소라기보다는 큰 폭발에 가깝습니다. 폭발을 제어하기 위해 '설계 - 제작 - 시험'의 단계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 엔진 4개 클러스터링 기술 - 1단에 있는 4개의 엔진은 마치 하나의 엔진처럼 동작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로켓이 아니라 미사일이 됩니다.
- 초경량 연료탱크 - 강하지만 가벼운 연료탱크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무게 90%가 연료탱크와 연료의 무게입니다. 누리호의 연료탱크는 직경 3.5미터지만 두께는 2-3mm에 불과합니다. 알루미늄으로 이뤄졌으며 균일하고 정밀한 용접이 필요했습니다.
75톤 로켓 엔진 개발 후, 2018년에 로켓 하나 부착된 1단 로켓을 시험 발사하며 원하는 비행궤적을 그리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다음 관문인 클러스터링 기술과 초경량 연료탱크 기술 개발까지 성공하며, 작년 1차 발사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둔 뒤, 얼마 전 2022년 6월 21일 2차 발사에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나로호 3차 발사 이후 9년 만에 자체 기술로 1단 로켓 제작에 성공했고, 탑재 중량과 투입 고도 및 총 중량과 길이 등의 스펙에서 나로호를 압도하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4. 개발 연구원의 고충
누리호 개발 당시 항우연 참여 연구원이 250명에 불과했습니다. 함께 투입된 산업체 인력까지 합해도 8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일본도 발사체 한 기에 3천여 명이 참여하고, 미국과 러시아의 경우는 2만 명의 인력이 참여합니다.
로켓 엔진 개발에 참여한 항공우주연구원 김진한 박사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중간에 실패를 해도 어느 정도 진척이 됐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10% 정도밖에 안 돼서 엔진이 폭발한 것인지, 95%까지 다 왔는데 마지막 몇 퍼센트의 실수로 폭발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컴컴한 어둠을 헤치고 개발에 성공한 누리호 개발에 관여한 모든 참여자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적은 인력이 일당백의 능력을 발휘해서 성공한 사실에 찬사를 보내는 것에 더해 열악한 개발 인력과 처우를 고민해야 합니다. 사명감으로 힘든 업적을 이뤄낸 사실에 정말 엎드려 절이라도 해드리고 싶을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언제까지 연구원에게 사명감만을 강조하며 형편없는 처우를 계속하려는지 묻고 싶습니다.
누리호의 성공 바로 다음날 '누리호 성공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이라는 게시글이 블라인드에 올라오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박사과정 졸업 연구원이 항우연에서 받는 초봉은 약 5,200만 원 수준입니다. 평균 보수도 전자통신연구원과 원자력연구원보다 훨씬 적습니다. (검색하면 자세한 금액과 출장 시 숙박비와 식비 정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로켓 관련 선진 기술의 이전이 없는 상태에서 정보 없이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는 연구 특성상 새벽까지 연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해도 당연히 수당은 없습니다. 누리호의 성공으로 생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 뒤에 아픈 현실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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